눈 오는 세도나의 겨울 드라이브 기록입니다. 89A 도로를 따라 펼쳐진 풍경
목차
눈 내린 세도나에서 시작된 하루
세도나에서 이렇게 눈이 많이 오는 날은 흔치 않습니다. 아침부터 창밖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기 시작했고, 평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하루가 열렸습니다. 눈 덮인 풍경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이들은 발자국을 남기며 뛰어놀았고, 어른들은 손에 커피를 들고 사진을 찍으며 조용한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저도 차 안에서 눈송이를 바라보다가 문득 손을 내밀어 하나를 잡아보았습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순간적으로 시간의 흐름을 붙잡은 듯한 감정을 선사했습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눈 내리는 날이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해졌습니다. 흩날리는 눈 속을 천천히 걷는 동안, 이 순간을 오롯이 기억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세도나의 붉은 바위 위에 하얗게 내려앉은 눈은, 마치 다른 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89A 도로를 따라 만난 겨울의 풍경
잠시 차를 멈추고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눈 덮인 나무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프레임 안에 담겼습니다. 마치 겨울과 봄이 공존하는 듯한 풍경이었고, 그 분위기는 차분하면서도 생명력을 품고 있었습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89A 도로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습니다. 눈길을 달릴 땐 속도를 줄이고, 풍경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산길을 따라 이어지는 도로 양옆에는 하얗게 물든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해발고도가 높아질수록 나무들은 점점 더 하얗게 빛났습니다. 도시 아래쪽에서는 눈이 채 녹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산 위로 오를수록 풍경은 완전히 다른 세계처럼 바뀌었습니다. 눈과 바람, 그리고 겨울 햇살이 만들어낸 섬세한 변화는 오직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조화처럼 느껴졌습니다. 익숙한 도로임에도, 오늘만큼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새로운 장소를 여행하는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붉은 노을과 눈꽃의 환상, 그리고 깨달음
차창 밖 풍경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고요하고 깊어졌습니다. 도로를 따라 흐르는 눈 덮인 협곡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고,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중간에 잠시 차를 멈추고, 눈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보았습니다. 발밑에서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부서지는 눈은 마치 자연이 들려주는 겨울의 음악 같았습니다. 손끝은 차가웠지만 마음은 따뜻했고, 그 순간만큼은 어떤 걱정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날따라 세도나의 하늘은 유난히 높고 깨끗했습니다. 겨울이 주는 단단한 공기 속에서 들숨과 날숨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고,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살아 있음을 느꼈습니다. 잠시라도 자연 안에 있는 그 감각, 도시에서는 잊고 지냈던 감정이 다시 되살아났습니다.
조금 더 달려 도심으로 향하는 길목에 들어섰을 무렵, 붉은 절벽 위로 마지막 햇살이 스며드는 장면을 만났습니다. 그 풍경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이었고, 나는 다시 차를 멈춰 사진을 남겼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진도 그날의 진짜 감정을 온전히 담을 수 없었습니다. 마음으로 느낀 풍경은 프레임을 넘어서는 깊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겨울의 눈 내림은 단순한 기상 현상이 아니라, 내게 새로운 계절의 문을 열어준 사건이었습니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다시 뜨거운 마음을 느꼈고, 익숙한 장소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여정을 경험했습니다. 세도나에서의 이 하루는 분명 짧았지만, 오래도록 기억될 따뜻한 겨울의 한 장면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