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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나 Eco농장에서 경험한 미나리와 영화 <미나리>의 의미

by WorldWonder 2025. 3.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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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김치를 직접 담근 모습
새콤하고 아삭한 미나리 김치

낯선 땅에서 미나리를 다시 마주한 순간, 단순한 채소 그 이상으로 다가온 감정을 나누어봅니다.

목차

영화 '미나리'와 나의 삶

영화 속 미나리는 생존과 희망의 상징이며, 이민자의 삶과 닮아 있습니다. 미국 마트에서 우연히 미나리를 발견한 날, 영화 <미나리>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미나리는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삶의 은유처럼 느껴졌습니다. 1980년대 아칸소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는 한국에서 이민 온 가족이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 제이콥은 닭 성별 감별사로 일하면서도 가족을 위한 농장을 일구려 애쓰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문화적 충돌, 가족 간 갈등까지 쉽지 않은 현실에 부딪힙니다. 그런 가운데, 할머니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개울가에 뿌립니다. 미나리는 물만 있으면 어디서든 자라나고, 돌보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며 퍼져나갑니다. 영화 후반, 농장이 불에 타고 모든 것이 무너진 듯 보이지만, 개울가의 미나리는 오히려 더 무성히 자라납니다. 이 장면은 고난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살아가는 가족의 강인함과 회복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한국에서는 흔히 접할 수 있었던 미나리가, 이곳 미국에서는 그렇게 귀하고 특별하게 다가왔습니다. 단지 향긋한 나물로 보이던 식물이, 낯선 땅에서 살아가는 나의 삶과 겹쳐지며 묘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미나리를 단순한 식재료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심고 뿌리를 내리는 과정을 통해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했습니다.

미나리 김치, 그리고 뿌리 실험

익숙한 맛으로 한 단은 김치로, 나머지 한 단은 도전과 실험으로 활용했습니다. 미나리를 두 단 구입한 후, 한 단은 미나리 김치로 담갔습니다. 고춧가루, 마늘, 멸치액젓 등을 넣고 손으로 정성스럽게 무치기 시작하자, 부엌 안에 익숙하고 향긋한 냄새가 퍼졌습니다. 양념에 버무려질수록 어린 시절 어머니 곁에서 미나리 김치를 담그던 풍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습니다. 미나리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 입안에 퍼지는 상큼한 향과 아삭한 식감은, 오래도록 잊고 있었던 한국의 맛을 다시 불러왔습니다. 단출하지만 깊은 맛이 있었고, 이국 땅에서 누리는 고향의 음식은 그 자체로 위로였습니다. 나머지 한 단은 실험용으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뿌리가 잘린 미나리를 과연 다시 살릴 수 있을까 궁금해졌고, 농장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 Root Starter(뿌리 성장 촉진제)를 추천해 주었고, 저는 근처 Home Depot에서 제품을 구입해 바로 실험에 들어갔습니다. 먼저 줄기 끝부분을 가볍게 잘라 상처를 낸 뒤, 촉진제를 듬뿍 묻혀 흙에 심고, 흠뻑 물을 주었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줄기 아래쪽에 작은 돌기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는 미나리가 다시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희망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단순한 실험이었지만, 그 가능성만으로도 마음이 벅차올랐습니다.

텃밭의 미나리, 그리고 나의 뿌리

미나리 재배는 단순한 농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미나리는 물만 있어도 어디서든 자라며, 특별한 관리 없이도 뿌리를 쉽게 내리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입니다. 논두렁이나 개울가에서도 스스로 번식하며 퍼져 나가는 이 작고 질긴 식물은, 이민자의 삶과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언어도 문화도 다른 환경 속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과정이, 물만 있으면 자라는 미나리의 생존 방식과 겹쳐졌습니다. 미국에서 이 미나리를 직접 심고 가꾼다는 행위 자체가, 단순한 원예 활동을 넘어서 상징적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농장 사람들과 미나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았더니, 영화 <미나리>는 보았지만 실제로 미나리를 먹어본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영화 속 미나리가 단지 채소가 아니라, 희망과 회복력, 그리고 가정의 따뜻함을 상징한다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렇게 미나리는 어느새 문화와 기억, 감정이 얽힌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텃밭 한쪽에 심어진 미나리를 바라보며, 저도 이 땅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체감하게 됩니다. 미나리 줄기 아래 자라나는 작은 뿌리처럼, 나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미나리가 어떻게 자라날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그리고 그 성장은 곧, 이곳에서 살아가는 제 삶의 또 다른  이유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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