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단어 하나에 눈물과 웃음이 모두 담긴 드라마였습니다.
목차
제주 엄마들의 삶, 다섯 가지 얼굴
이 드라마는 단순한 성장 이야기를 넘어, 제주라는 섬의 거칠고도 따뜻한 바다를 배경으로 한 여성의 인생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주인공 오애순은 어린 시절 엄마를 여의고 새아버지와 이복동생들과 함께 살아가면서, 소녀, 아내, 엄마로서의 다양한 역할을 수행합니다. 그녀를 둘러싼 다섯 명의 엄마들은 모두 각기 다른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전광례(염혜란 분)는 오애순의 친엄마로, 고된 해녀의 삶 속에서도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며 “해녀는 절대 되지 마라”는 간절한 말을 남깁니다. 김춘옥(나문희 분)은 외할머니로, 말없이 따뜻한 눈물과 함께 오랜 세월을 견뎌온 단단한 어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민옥(엄지원 분)은 새엄마로, 가족 속에서 조용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그 미묘한 감정을 전합니다. 그리고 주인공 오애순(아이유 분)은 자신만의 길을 걸으며,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자식을 키우고 어촌의 한계를 극복해 나갑니다. 마지막으로 권계옥(오민애 분)은 시어머니로, 감정 표현은 드물지만 가족을 위해 묵묵히 움직이며 ‘나중에 내가 서게 될 자리’를 암시합니다. 이처럼 다섯 얼굴의 엄마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한결같은 사랑을 전하며, 제주 여성의 시대와 모성, 그리고 인생의 의미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내 이야기 –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떠오른 기억
드라마를 보면서 저는 3년 전의 제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교통사고 이후, 예전처럼 활동할 수 없게 된 저는 긴 시간 누워 있어야 했으며, 기억마저 멈추는 공포를 경험하였습니다. 그때 저를 붙잡은 것은 다섯 살 시절 아버지와 함께한 평범한 날들의 기억이었습니다.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하여 지금의 기억보다도 또렷하게 다가왔습니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무너진 시간을 되찾기 위해 저는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때로는 그림일기처럼, 때로는 소설처럼 하루하루를 기록하며 2년 넘게 글을 다듬고 수정하였습니다. 그 결과, 제 이야기는 한 편의 그림책이 되었고, 지금은 스토리텔링과 유튜브 작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삶을 보며, 저는 제 인생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희망을 다시금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와 따뜻한 사랑을 느끼며, 제 기억 속에 멈춰버린 시간들이 다시 흐르기 시작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과정은 제 자신을 회복시키고, 앞으로의 삶을 다시 세워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딸로서, 엄마로서, 나로서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나를 다시 정의해 보게 되었습니다. 딸이자 엄마인 내 삶은 언제나 누군가의 존재에 기댄 동시에, 누군가를 지탱하는 자리였습니다. 드라마 속 오애순처럼, 나 역시 한때는 누군가의 품 안에 기대 살았고, 지금은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는 단순히 한 여성의 인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여성들이 걸어온 ‘보통의 위대함’을 세밀하게 그려냅니다. 모든 장면이 눈물겹지만, 특히 인물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마음 깊숙이 와닿았습니다. 말없이 국을 퍼주고, 뒷모습만으로 응원하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어른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가 기억하는 ‘엄마’의 얼굴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때로는 엄격하고, 때로는 조용하며, 무엇보다 변하지 않는 믿음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이 드라마를 통해 내 엄마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고, 동시에 나의 엄마 됨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갈등과 선택, 후회와 감사는 오애순이 걸어간 그 길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결국 ‘엄마’란, 단지 자식을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견디며 세대를 이어가는 존재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난 뒤, 마음속에서 울림처럼 남은 문장이 하나 있습니다. "삶이란, 결국 사랑을 남기는 일이다." 그 사랑의 자리에, 지금도 나는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