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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허무는 존재
세도나에 살다 보면 하벨리나와 마주치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주차장, 도로, 집 앞마당 등 일상의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그들은 사람들 곁을 어슬렁거리며 별다른 경계 없이 살아갑니다. 놀랍게도 이들의 등장에 위협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세도나에서는 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하벨리나는 사람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허무는 존재입니다. 그들은 담장을 넘나들고, 인도와 뒷마당을 가로지르며 인간의 공간을 두려움 없이 지나갑니다. 사람들 또한 이들과의 공존에 익숙해져 가며, 세도나에서는 자연과 인간이 더 이상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는 하벨리나가 낯설고 신기한 존재로 다가왔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삶이 이 지역의 일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벨리나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세도나의 자연과 인간을 잇는 연결 고리이며, 그 존재만으로도 이곳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하벨리나는 무리를 이루어 살아갑니다. 혼자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울 정도로 항상 함께 움직이며, 어미는 새끼를 보호하고 무리는 서로를 지켜줍니다. 어린 하벨리 나가 뒤처지면 어른 하벨리 나가 다가가 등을 살짝 밀어주며 앞으로 이끕니다. 이러한 모습에서 가족의 의미와 유대의 가치를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세도나의 길을 천천히 걷는 하벨리나 가족을 바라보면,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떠올리게 됩니다. 내 아이들 또한 그들의 모습처럼, 함께 걷고, 서로를 지켜보며 성장하고 있습니다. 가까이 있든 멀리 있든, 우리는 하나의 울타리 속에서 연결되어 있음을 이 작은 생명체들이 일깨워 줍니다. 하벨리나의 삶을 통해 가족이란 물리적으로 함께 있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도 배웁니다. 서로를 믿고, 떨어져 있어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연한 관계, 그것이 진정한 가족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평온한 걸음 속에는 따뜻한 유대와 생존의 지혜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세도나의 숨결, 하벨리나
하벨리나는 미국 남서부, 특히 애리조나와 뉴멕시코, 텍사스, 멕시코 북부 지역에서 널리 서식하는 유제류 동물입니다. 생물학적으로는 멧돼지가 아닌 페커리(Peccary)과에 속하며, 주로 선인장, 뿌리, 과일 등을 먹고사는 초식성입니다. 세도나에서는 이 하벨리나가 단순한 야생동물을 넘어 지역의 상징적인 존재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붉은 바위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하벨리나의 모습은 세도나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으며, 인간과 자연이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입니다. 낮에는 사람 곁을 지나며 도시의 일부처럼 살아가고, 밤이 되면 고요한 숲속으로 스며드는 그들의 하루는 마치 이 지역의 숨결과도 같습니다. 특히 봄과 가을에는 활동량이 많아, 새끼 하벨리나를 동반한 가족 무리를 더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조용한 움직임과 무리의 협동은 세도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고 있으며, 이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삶의 중요성을 직접 체감하게 됩니다. 하벨리나는 첫인상만으로는 거칠고 위협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화롭고 섬세한 생명체입니다. 경계를 허물고, 무리와 함께 살아가며, 자연 속에서 인간과 공존하는 이들의 모습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삶의 원리를 일깨워 줍니다.
하벨리나는 세도나의 진짜 주인이자, 자연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를 품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들의 존재는 세도나가 단순히 아름다운 관광지가 아니라,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귀중한 상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